누가 제발, 내게는 피터 헤슬러의 책이 왜 이렇게도 재밌는지, 분석해서 설명해줄 수 없을까?

 

이집트 혁명이나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이 책을 읽기 전에 다른 이집트 역사 관련 책을 좀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시작했는데, 필요없었다.

그러니까 헤슬러가 중국에 대해서 쓴 책이 너무 흥미롭고 재밌었던 것도, 나의 중국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과 애정과는 무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충 한 챕터에 두세번은 쿡쿡거리게 되고, 한 번은 파안대소하게 만드는 비율로 책이 재밌다.

(어제 한 부분은 너무 웃겨서 읽어드리니, 큰 분도 재밌어 하긴 하셨다.)

 

아직 고작 4% 읽고 있지만, 이책을 재밌게 읽을 것이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책 제목이, 너무나 마이너해서, 이렇게 재밌는 책을 재밌다고 주위에 권할 수도 없는 것이 슬플 뿐이다)

 

 

 

 

 

 

 

1) 약간 긴 농담

 

아랍의 봄 이후 취임한 대통령 무르시는 '12년 11월에 모든 재판에 자신이 관여할 수 있다는 한시적인 대통령령을 선언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하였다. 시위대는 무르시의 정치적 배경인 무슬림형제단 본부를 습격하여, 가구와 서류 등을 광장으로 끄집어내어 불을 질렀다. 다음날 기자들은 불에 타고 남은 서류들을 뒤적거리며 중요한 문서가 없는지 찾아봤는데, 그 틈에 헤슬러 또한 끼어들어 뒤적거리다가 파리의 한 식당에서 식사한 비용의 청구서와 영수증을 발견하였다. 생선수프와 생선 2마리, 그리고 화이트 와인 반 병.

This was my most damning discovery : a Muslim Brother had been reimbursed for Chardonnay.

 

(헤슬러 책을 그냥 읽을 땐 이런 부분에서 빵빵 터지고 난리인데, 이걸 전하려고 줄이거나 설명하면... 이상하게 안웃기네;;)

 

 

2) 끝내주는 비유

 

10세기에 알아자리라는 이름의 사전편찬학자는 베두인 족에게 납치되는 엄청난 축복-알 함두리라! 하느님을 찬양합시다!-을 받았다. 이 경험으로 그는 "The Reparation of Speech"라는 사전을 편찬하였다. 책의 서문은, 일종의 문법적 스톡홀름 신드롬에서 in a kind of grammatical Stockholm syndrome, 호들갑스럽게 납치범들을 찬양한다. "그들은 사막 본연과 뿌리깊은 본능에 따라 말을 한다. 그들의 말에서는 언어적이거나 지독한 실수를 거의 들어볼 수 없다."

 

(아랍 공용어 후스하 al-fusha는 꾸란을 정리하며 표준어로 자리잡았는데, 이 때 베두인족의 말의 순수성이 높이 평가받아 그 표준어의 기초가 되었다. 공용어 정리에 al-Azhari 라는 사전편찬자의 기여가 컸다고 한다... 역시나 데굴데굴 구를만큼 천재적이라고 치켜올렸던 표현인데, 이 따위라니!)

 

 

3) 상상도 못한 이야기들

 

중국 저장 지방 출신의 중국인들은 상이집트 지역의 작은 소도시들에도 꼭 속옷을 팔면서 자리잡고 있는데, 어쩌다가 하필이면 저장성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속옷을 팔게 되었는지, 어떻게 헤슬러가 처음으로 이 중국인을 만나게 되었는지가 또 끝내주게 재밌다. (내가 쓰면서도 재미가 없지만, 헤슬러는 진짜 웃기게 쓴다니깐 ㅜ.ㅜ)

조금만 더 상세하게 쓰자면... 헤슬러가 고대유적지를 방문하거나 하면서 이집트 여러 지역을 다니는데, 어느 소도시에서 흔치 않은 미국인을 만난 이집트인들이 헤슬러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묻다가, 헤슬러가 중국에서도 살았다고 하니, 몹시 반가워하며, "중국인! 우리 도시에도 있어!"라며 데려가 보니 중국인이 하는 속옷 가게였다. 헤슬러가 신기해하니 그 중국인은 "옆도시엔 내 사촌이 속옷 가게를 하고 있어"라고 하고, 그 뒤로 헤슬러는 이집트 지방 여행 중에는 아무 도시에서나 "여기 중국인 속옷가게 있니?"라고 택시 기사 같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따라와"라며 중국인이 하는 속옷 가게에 데려다주곤 해서, 카이로를 제외한 지역에서 발견한 중국인 속옷상이 26명에 달하게 되었다. 헤슬러는 이들이 장사하는 대목에 속옷 가게에서 흥정을 지켜보기도 하며 저장성 중국인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4) 끝을 보기가 꺼려지는

 

prickly, contradictory, lovable 한 아랍어 선생을 잃게 되는 시점에, 헤슬러는 지속적인 경찰들의 감시를 받으며, 이 훈련받지 못한 경찰들이 실수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중국에 관한 여러 책을 읽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을 더 직접적으로 빠른 시간에 겪게 되는 건 아마 중국에서는 정치 외의 다른 것들을 더 많이 다루고, 이집트에서는 그렇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고... 왠지 씁쓸한 마무리를 볼 것 같은 예감에 책장 넘기는 것이 조금씩 꺼려지고 있다.

Posted by 구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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