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좀 살살해도 되는 때가 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늘 더 빡빡해지는 이야기 밖엔 안들린다.
살면서 뭔가를 무리스럽게 열심히 했던 기억이 거의 없는데,
점점 무리스럽게 뭔가를 하는 게 더욱더 싫어진다.
그냥 자연스러운 정도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흐르는 대로 좀 보면 안되나.
설거지거리들이 잘 안 닦이면 그냥 물에 적셔서 시간을 두는 것처럼,
뭔가 당장 꼭 마무리까지 다 해야 하는 걸까,
밥풀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들이 더 많지 않을까.
여튼 뭐 만사 귀찮다, 는 이야기를 또 이렇게 길다랗게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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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 교보문고
풍요로운 색채와 향기,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건축가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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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을 읽고 있는 게 맞았나, 하고 서너번은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맨처음 여름별장을 묘사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제국호텔 이야기가 그랬고,
아스카야마 교회를 실측하는 장면이 그랬고,
현대도서관 설계는 더더욱 그랬다.
아 언젠가는 나도 스톡홀름 도서관도 가보고 싶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스토리야 대충 다 짐작되는 그 스토리가 맞는데,
묘사하는 그 사람들의 생활이 내가 흔하게 보던 게 아니었다.
나와 내 주변이 아둥거리며 살던 현실속의 그 사람들도 아니고,
한국 드라마에서 내내 보여주는 화려하고 살벌한 재벌가의 사람들도 아니고,
70년대 이전부터 이미 유복했고 자유롭게 공부하고 조용하게 사유하며 여유를 누리는 사람들의 삶과 태도가 매우 달라서, 2012년에 발표한 작품임에도, 오랜만에 옛날 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1.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의 천도재에 참석해서 1시간 넘게 앉아 있는 수더분한 인상의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왜 여기에 와 있을까, 라고 잠시 의문을 가졌다.
이게 그들에게도 인생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낯선이의 차례였지만, 곧 닥칠 내 차례를 생각해보고,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볼 수도 있겠네, 하는.
그 와중에 이런 문구를 마주쳤다.
Hodie mihi, cras tibi
2.
깊이,
빼낼 수도 없는,
수천만년 동안, 퇴적되어, 다시 온도와 압력에서 변성된 지층에 박힌 자갈과 같이,
상실의 기억은 영구히 보존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런 것들이 쌓여서, 몸 속에 굳이 빼내지 않아도 상관은 없는,
그리고 절대로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 결절이라든가 뭐 이런 게 되어 가는 건가 싶기도 하다.
M이 아침에 말해주었다.
- 밑에 한남동 빵집이 팝업을 한다고 준비중이더라. 보면서 너한테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지.
감사를 표하며 그 빵집이 무슨 빵집인지 매우 궁금했지만 까먹고 오후 4시경에나 생각이 나서,
가봤을 법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 빵집이 있긴 했던 거 같아.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어. 근데 무슨 빵이 있었는지는 못봤어.
라고 하는 쪽이 한무리,
또 다른 무리에게 갔더니, 이런 저런 빵이 있었다며 그 중 두어 종류를 사왔다고 맛보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빵이 아닌 다른 정보를 주었는데,
- 근데 알바들이 무슨 모델이야. 키크고 너무 잘생겼어.
라는 것이었다.
다음날도 한대서 꼭 가보겠다 하며 헤어지고,
진짜로 그 다음날 까먹지 않고 팝업에 들르기는 했다.
아 페스추리 전문이구나, 근데 대량으로 가져오려니 다 퀸아망이나 이런 종류를 많이 가져왔구나 하고서 몇 종류 골고루 담아서 잠시 줄을 섰다가 계산을 하고 신나게 올라와서 어제 얻어먹은 빵을 갚으러 갔다가,
- 봤어? 진짜 잘 생겼지?
라고 해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잘생긴 알바는 내가 갔을 때 없었나....
- 그게 못볼래야 안봐지는 미모가 아니던데...
....
이렇게까지 빵에 집중할 일이었나.
....
빵은 뭐... 평범했다....
가보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안타까움에,
물건들만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하루는 보리빵을,
다음날엔 쫀뜩한 쿠기를,
그 뒤엔 삼계탕,
그 담주는 종류별로 주스들을,
위로의 꽃이라는 것을 보면 그조차도 반가워서 보내고 있다.
그 중 하나라도, 위로로 가 닿기를.
+
- 인*타 광고에 기꺼이 몸을 던져 낚여서, 하나 보냈다.
- 우리는 다 낚이지. 미리 가서 입 내밀지.
- 나는 항상 내 곁에 있을게, 라는 꽃말이 웃기지만 좋네.
네 곁에 있을께의 오타라면 그 뜻도 좋고,
나는 늘 내 편이지, 라는 뜻 그대로라면 그것도 좋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