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2021. 12. 13. 10:46
듄 1부 : 듄 - 8점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황금가지

영화를 보고야 말았지. 영화는 잘 만들고 말야. (남주는 이쁘더라구. 작은아씨들 볼 땐 잘 몰랐는데;)

 

덕분에 백만년만에 소설, 2백만년만에 SF를 읽는 중이다.

원래 책읽으면서 각주가 뒤에 몰려 있으면 웬만해선 안찾아 읽고 그냥 쭉 읽어버리는 편이라, 듄이 읽기 어렵다는 건 이해가 안되었다. 그냥 첫부분이 지루해서 몰입이 안돼서 읽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나 싶다.

여튼 이북으로 1200쪽이 넘는데, 대충 영화 내용까지는 한 700쪽 무렵까지 가야 맞춰진다.

 

초반엔 문장이 재미가 없고, 나름 설정이 너무 디테일한 덕분인지 각주는 넘쳐나고, 뒤로 갈수록 폴의 각성과 성장을 묘사하기 위해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고, 전설과 신화적인 요소들을 넣어주기 위한 직관적이지 않은 노래 대사들까지... (톨킨에게 바치는 SF인가?)

읽기 편안한 책은 아니었지만, 원래 모든 읽기를 상세하게 하기보다는 대충 하는 사람이라 지루함만 이기면 된다, 하는 정신으로 읽다가, 갑자기 500쪽이 넘어가면서 재밌어지고, 폴이 아라키스 식의 성인이름을 고르는 데서는 크게 감탄하고 말았다.

예지력으로 보는 것은 정해진 하나의 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갈림길을 보고 거기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선택의 결과를 미리 볼 수 있고, 그에 따라 어느 미래인가를 선택하는 것이구나, 라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폴은 본인이 태어나게 된 끔찍한 목적을 알고, 그 미래가 오게 하지 않도록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가 보지 못했던 미래의 이름을 선택한다. 폴의 예지력은 단선적인 미래를 알고 그 미래가 실현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무르익어 흘러가게 될 원하지 않는 미래의 운명을 피하고자 하는, 예측의 능력에 더 가깝다.

이것은 내가 늘 경탄해 마지 않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속성, 자유의지의 또 다른 찬양이다.

 

이제 폴(과 작가의 사상)에게 반하는 것까지 읽었고, 남은 듄은 즐겁게 읽어보도록 하자.

Posted by 구이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