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 10점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까치

어딘가 이름조차 종교적인 무케르지의 두번째 책은 오로지 첫번째 책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선택했다.
 
무케르지의 집안에 드물지 않았던 조현병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며, 책은 흥미로웠으나, 넘어야 하는 산은 몹시 버거워서, 몇번이고 중단되었다가, 드디어 끝까지 읽게 되었다.
멘델의 수도원의 완두콩과, 다윈의 갈라파고스의 핀치, 성게알의 염색체와, 
초파리와, 선충과, SV40 바이러스까지 지나기 위해서,
슬프고 아픈 나치의 독일도 지나야했고, DNA 나선구조 발견의 유치하기도 한 경쟁도 지나야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꾸역꾸역 절반쯤 이해하고 이해한 것의 절반쯤 오해하며 읽은 뒤에, 인류학과 유전이 만나면 이야기는 훨씬 흥미롭고 이해할 만해진다.
 
인간의 발생과, 인종과, 성의 결정 이야기로 넘어가고, 나는 유전자에서조차 '선택'이 개입한다는 것에 매료되었다.

+
가타카나, 어글리 시리즈 같은 SF에서나 나오던 미래가 생각보다 멀지 않게 와있는 것 같다.
무케르지는 전작에 이어 이번 책도 book hangover 가 남을 정도로 멋지게 풀어내고 있다. 의학과 과학에 인간을 생각하고 더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것이 무케르지의 매력이다.
다음 책 고르기가 몹시 어려워졌다.



생물은 가능한 반응들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반응들 덕분에 존재한다.
- 176쪽


테세우스의 배
배의 널이 썩기 시작한 강 위의 배를 생각해보라는 델포이의 신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무가 썩어가면서, 널은 하나씩 교체된다. 그렇게 10년이 흐르자, 원래 배에 있던 널은 모조리 교체된다. 그러나 배의 주인은 그것이 여전히 같은 배라고 확신한다. 원본의 모든 물질적 요소들이 교체되었는데 어떻게 같은 배일 수 있다는 것일까?
답은 "배"가 널 자체가 아니라 널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252쪽


배아의 모든 미토콘드리아가 오로지 모계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은 한 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로부터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았고, 그 어머니는 미토콘드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았다. 그런 식으로 무한히 먼 과거까지 모계가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이어나간다. (...역설적이게도 '호문쿨루스 homunculus' 같은 것이 있다면, 여성만이 가진 셈이다. 따라서 '페문쿨루스 femunculus'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 423쪽


현생 인류의 미토콘드리아는 한 종류이고 우리 모두의 미토콘드리아 계통은 약 2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여성에게로 이어진다. 그녀는 우리 종의 공통 어머니이다. 우리는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녀의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은 보츠와나나 나미비아에 사는 산족의 여성들이다.
나는 그 시조 어머니라는 개념에 한없이 빠져드는 것을 느낀다. 인류유전학계에서 그녀는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l Eve)라는 멋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 424쪽

 
우리 유전자는 개별 환경에 계속 똑같은 방식으로 진부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태엽장치 자동인형이나 다름없어질 것이다. 오래 전부터 힌두 철학자들은 "존재"의 경험을 그물(jaal)이라고 묘사해왔다. 유전자는 그 그물의 실이다. 모든 개별 그물을 존재로 전환시키는 것은 거기에 달라붙는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그 별난 설명 체계에는 절묘할 만치 정확한 부분이 하나 있다. 유전자는 환경에 프로그래밍된 반응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형태도 보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는 우연의 장난이 끼어들 여지도 충분히 남겨두어야 한다. 우리는 이 교차를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운명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선택"이라고 한다. 따라서 마주보는 엄지를 가진 곧추선 동물인 우리는 하나의 대본에서 만들어지지만, 그 대본에서 벗어나도록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그런 생물 중에서 독특한 변이체 하나를 "자아"라고 부른다.

487쪽

Posted by 구이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