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존, 바이 폴

책일기 2020. 9. 22. 09:45

 

소설류를 잘 읽지 않게 된지 명확하게는 3년, 희미하게는 5년에서 10년.
무라카미 류와 하루키를 보냈듯, 폴 오스터와 존 쿳시를 보낸다.
 
좀 더 젊었을 때 읽어서인지 폴 오스터 쪽은 한 권 한 권 대강의 내용들이 생각나는데 비해,
(그런 의미에서 미스터 버티고와 리바이어던은 살짝 한 귀퉁이에 숨겨놓은 건 비밀;;)
존 쿳시 책은 느낌만 대충 뭉뚱그려서, 뭐가 옳은 지 알지만 뭘 어쩔 수 없는 허허롭고 무력한 그런 느낌, 정도로만 기억이 난다.
다만, 8권의 책을 주르륵 세워놓으니, 한창 그의 문장에 빠졌었다는 것, 8권을 읽어치울 동안 질리지 않았다는 것은 명확하게 알겠다.
 
All the best for both of you, Paul and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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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가 지난달 말일에 별세하셨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살아있는 자들이 쓴 글을 읽지 않는다, 라고 하면서 죽은자인양 모든 책을 읽어대던 이야기꾼이었는데, 어느 순간 더 읽지 않았다. 정성들인 별세 기사를 보다 오스터의 마지막 소설은 궁금해져서 읽어볼 예정이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38909.html#cb

‘뉴욕 3부작’ ‘우연의 음악’ 쓴 미국 작가 폴 오스터 별세

‘뉴욕 3부작’ ‘4 3 2 1’ 등의 소설과 함께 “동시대 미국의 가장 위대한 문장가”로 평가받는 미국 작가 폴 오스터가 30일 별세했다. 향년 77.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폴 오스터가 폐암 합병증으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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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래된 수첩에서 어느 책에서 베껴놓은 건지 써놓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어느 책, 어떤 부분에서, 누가, 누구에 대해서 언급한 것인지까지 너무 알겠는.


That was one of the things that most appealed to me about him : the purity of his ambitions, the absolute simplicity of the way he approached his work. It sometimes made him stubborn and cantankerous but it also gave him the courage to do exactly what he wanted to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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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kiddo," she said. "Did you miss me?"
"Nonstop," he said. "From the minute I last saw you until now." He delivered the line with enough bravura to make it sound like a joke, a bit of facetious banter, but the truth was that he meant it.
- p.235

Posted by 구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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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이해할 수 없는데 웃겨서 쓰러지시는 게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뭔지 알아둬도 쓸데없을 재미가 있을 거라는 강한 예감에 시작.

 

읽기 시작하자 마자, 예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구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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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책일기 2020. 6. 9. 09:32
배움의 발견 - 10점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열린책들

 

추천 1이 있었고,

설정이 과하다는 느낌에 손이 안나갔고,

추천 2가 있어, 이 정도면 조금 맛이라도 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인정.

좋은 책이다.

 

 

Posted by 구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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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발, 내게는 피터 헤슬러의 책이 왜 이렇게도 재밌는지, 분석해서 설명해줄 수 없을까?

 

이집트 혁명이나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이 책을 읽기 전에 다른 이집트 역사 관련 책을 좀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시작했는데, 필요없었다.

그러니까 헤슬러가 중국에 대해서 쓴 책이 너무 흥미롭고 재밌었던 것도, 나의 중국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과 애정과는 무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충 한 챕터에 두세번은 쿡쿡거리게 되고, 한 번은 파안대소하게 만드는 비율로 책이 재밌다.

(어제 한 부분은 너무 웃겨서 읽어드리니, 큰 분도 재밌어 하긴 하셨다.)

 

아직 고작 4% 읽고 있지만, 이책을 재밌게 읽을 것이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책 제목이, 너무나 마이너해서, 이렇게 재밌는 책을 재밌다고 주위에 권할 수도 없는 것이 슬플 뿐이다)

 

 

 

 

 

 

 

1) 약간 긴 농담

 

아랍의 봄 이후 취임한 대통령 무르시는 '12년 11월에 모든 재판에 자신이 관여할 수 있다는 한시적인 대통령령을 선언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하였다. 시위대는 무르시의 정치적 배경인 무슬림형제단 본부를 습격하여, 가구와 서류 등을 광장으로 끄집어내어 불을 질렀다. 다음날 기자들은 불에 타고 남은 서류들을 뒤적거리며 중요한 문서가 없는지 찾아봤는데, 그 틈에 헤슬러 또한 끼어들어 뒤적거리다가 파리의 한 식당에서 식사한 비용의 청구서와 영수증을 발견하였다. 생선수프와 생선 2마리, 그리고 화이트 와인 반 병.

This was my most damning discovery : a Muslim Brother had been reimbursed for Chardonnay.

 

(헤슬러 책을 그냥 읽을 땐 이런 부분에서 빵빵 터지고 난리인데, 이걸 전하려고 줄이거나 설명하면... 이상하게 안웃기네;;)

 

 

2) 끝내주는 비유

 

10세기에 알아자리라는 이름의 사전편찬학자는 베두인 족에게 납치되는 엄청난 축복-알 함두리라! 하느님을 찬양합시다!-을 받았다. 이 경험으로 그는 "The Reparation of Speech"라는 사전을 편찬하였다. 책의 서문은, 일종의 문법적 스톡홀름 신드롬에서 in a kind of grammatical Stockholm syndrome, 호들갑스럽게 납치범들을 찬양한다. "그들은 사막 본연과 뿌리깊은 본능에 따라 말을 한다. 그들의 말에서는 언어적이거나 지독한 실수를 거의 들어볼 수 없다."

 

(아랍 공용어 후스하 al-fusha는 꾸란을 정리하며 표준어로 자리잡았는데, 이 때 베두인족의 말의 순수성이 높이 평가받아 그 표준어의 기초가 되었다. 공용어 정리에 al-Azhari 라는 사전편찬자의 기여가 컸다고 한다... 역시나 데굴데굴 구를만큼 천재적이라고 치켜올렸던 표현인데, 이 따위라니!)

 

 

3) 상상도 못한 이야기들

 

중국 저장 지방 출신의 중국인들은 상이집트 지역의 작은 소도시들에도 꼭 속옷을 팔면서 자리잡고 있는데, 어쩌다가 하필이면 저장성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속옷을 팔게 되었는지, 어떻게 헤슬러가 처음으로 이 중국인을 만나게 되었는지가 또 끝내주게 재밌다. (내가 쓰면서도 재미가 없지만, 헤슬러는 진짜 웃기게 쓴다니깐 ㅜ.ㅜ)

조금만 더 상세하게 쓰자면... 헤슬러가 고대유적지를 방문하거나 하면서 이집트 여러 지역을 다니는데, 어느 소도시에서 흔치 않은 미국인을 만난 이집트인들이 헤슬러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묻다가, 헤슬러가 중국에서도 살았다고 하니, 몹시 반가워하며, "중국인! 우리 도시에도 있어!"라며 데려가 보니 중국인이 하는 속옷 가게였다. 헤슬러가 신기해하니 그 중국인은 "옆도시엔 내 사촌이 속옷 가게를 하고 있어"라고 하고, 그 뒤로 헤슬러는 이집트 지방 여행 중에는 아무 도시에서나 "여기 중국인 속옷가게 있니?"라고 택시 기사 같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따라와"라며 중국인이 하는 속옷 가게에 데려다주곤 해서, 카이로를 제외한 지역에서 발견한 중국인 속옷상이 26명에 달하게 되었다. 헤슬러는 이들이 장사하는 대목에 속옷 가게에서 흥정을 지켜보기도 하며 저장성 중국인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4) 끝을 보기가 꺼려지는

 

prickly, contradictory, lovable 한 아랍어 선생을 잃게 되는 시점에, 헤슬러는 지속적인 경찰들의 감시를 받으며, 이 훈련받지 못한 경찰들이 실수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중국에 관한 여러 책을 읽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을 더 직접적으로 빠른 시간에 겪게 되는 건 아마 중국에서는 정치 외의 다른 것들을 더 많이 다루고, 이집트에서는 그렇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고... 왠지 씁쓸한 마무리를 볼 것 같은 예감에 책장 넘기는 것이 조금씩 꺼려지고 있다.

Posted by 구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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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독 - 필 나이트

책일기 2020. 2. 21. 11:02

 

슈독 :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자서전 - 10점
필 나이트 지음, 안세민 옮김/사회평론

 

오후 반차내고 마저 읽어야 할 책.

몇 번이고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아래를 확인해보는 이유는,

"이렇게나 막강한 나이키를 설립한 남자인데,

왜 아직도 이렇게 빌빌 거리고 있는 거지? 책의 어느 정도까지 징징거릴거지?

10%는 지난 거 같고, 20%도 넘겼고, 1/3 이상을 읽은 거 같은데,

아직도 '망할 거 같아' 라고 걱정하면서 회사를 꾸려 가는 거야?"

라는 의문이 계속 들어서이다.

이제 책 절반을 넘겼으며, 나이트는 여전히 아디다스를 따라잡지 못한 상태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의 책일 거라고 한 이유가 이제 슬슬 짐작이 된다.

"그들도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가 아마도 이 책을 관통하는 깨달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이트가 거의 10년째 두려움에 떨며 회사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책 절반을 분명하게 넘어선 지점에서 들기 시작했다.

 

오후는 반차다!

 

웬만한 소설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이 책을 마저 읽지 않을 수가 없다!

 

 

 

+

반차는 못갔다. (젠장)

책은 끝까지 재밌었고,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아무래도 시대가 변했다 보니, 거슬리는 부분들이 눈에 많이 띄고...

이렇게 우직하게 자수성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꼰대의 스멜도 짙고...

등등의 단점들도 분명히 있지만,

 

이야기는 흥미롭고 자극도 주고 깨달음도 준다는 장점도 많은 책이다.

 

처음에 멋대로 예측한 것처럼 두려움을 이겨내는 위인들의 이야기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계속해서 급속도로 성장하는 운전자본이 큰 사업을 운영하며 늘 현금 부족에 시달리는 CEO지만, 돈만을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돈은 우리몸의 현금과 같이 없으면 기업이 죽겠지만, 우리가 혈액 순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업도 돈만이 목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사명감,

나이키의 해외생산 공장들에 대한 지적에 대해 '우리가 더 낫게 만들었다'는 자부심에 화를 내지만, 결국,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수성 접착제를 개발하고 이를 무상으로 경쟁업체들에게 제공하거나, 제3국의 어린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the girl effect 사업 등을 이뤄나가는 점은 분명히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다.

 

나이트는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보다 재산도 훨씬 적고, 다른 경영자들처럼 카리스마도 없는 사람이라고 겸손해 하지만,(책에서도 내내 징징거리시고), 그는 사명감으로 나이키 같은 회사를 일군 사람이고, 대부분은 그런 성과를 일구지 못하겠지만, 돈이 목표가 아닌 삶, 더 나아지겠다는 결심과 실천은, 보통 사람들의 인생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요소일 것이다.

 

 

++ book hangover가 걱정되어서, 다음 책 고르기가 망설여지는 덕분에, 다시 또 로맨스 ㅋㅋ

Posted by 구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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