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계급투쟁 - 6점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사계절

 

저자가 일본인인줄 몰랐다.

일본 번역체로 소설 아닌 걸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 부분이 좀 거슬리긴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얼핏 얼핏 보이던 영국의 언더클래스 이야기를 좀 더 상세하게 알게 되고,

이어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영화를 보니 정말 눈물이 주륵주륵 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죽음 밖에 남겨놓지 않은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노동당 시절의 복지도, 보수당 시절도 어느 쪽도 인간의 존엄을 위한 배려는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

 

최근의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정말로 세상은 디스토피아로 나아가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Posted by 구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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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I 2 - 서양의학사

책일기 2020. 2. 19. 17:01
서양의학사 - 8점
윌리엄 바이넘 지음, 박승만 옮김/교유서가

 

VSI를 두 권째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이게 "short"에 중점을 둔 거라 전혀 "easy"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introduction이라는 건 보통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해주는 거니까 기본이 쉬워야 하는 건... 원래 상식이 풍부한 사람에게 하는 건 굳이 쉽지 않아도 되는 건가 ㅜ.ㅜ)

 

서양의학사도 역시 니가 이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내가 이런 정도까지는 이야기해줄 수 있고, 그리고 너는 계속해서 이러저러한 책들을 더 읽어보는 것도 좋겠지, 라는 책이었다.

 

현재의 병원 개념이 아주 늦게서야 나타난 것이라던가, 외과의의 지위가 더 낮았다던가, 히포크라테스는 다양한 장르의 "의업"(사이비거나 정통이거나)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에게서 근본정신을 물려받고 있다고 여겨진다거나, 의사들의 지식과 경험과 실력은 여전히 매우 다르기 때문에 환자들은 신중하게 의사를 골라야 한다거나, 만성 질환의 약 개발만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눈에 띄지만,

전반적으로 다 몰랐던 이야기라, 읽는 것은 즐거운 책이다.

 

다만, 역자의 추천대로 동양의학사도 포함한 책으로 더 파볼 것인가 라는 점은 잘;;

(예전 같으면 더 들어갔겠지만 지금은 에너지가 부족해서 ㅜ.ㅜ)

Posted by 구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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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aveyard Book (Paperback) - 10점
Gaiman, Neil/Harpercollins Childrens Books

 

큰 분의 학원 교재라 아무 생각 없이 제목만 보고 주문했다가, 도착한 책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뭐? 닐 게이먼? 내가 아는 그 게이먼? 게다가 나는 안 읽은?

 

당장 뺏어서 읽다가, 숙제 해야 한다고 뺏겼다가, 왜 거기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곳곳에 형광펜 그어진 채로, 과정이 끝났다며 도로 던져주어 마저 읽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소설에다가, 닐 게이먼에다가, 일종의 판타지?

게임을 못할 정도로 책에 푹 빠져 열심히 읽었다.

 

The Man Jack들의 다른 악행이나 Silas의 정체나 이야기의 개연성이 다 매끄럽지 않았지만,

우선 묘지에서 유령들이 돌보는 아이라는 것부터가 너무나 매력적이지 않은가.

 

Between now and there, there should be the life.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들(the deads)과 마찬가지로 죽는 게 뭐가 나쁘냐는 Bod에게 그래도 그 사이에 삶이 있어야 한다는, 그리하여 가보지 않은 길을 남겨두지 말라고 등떠밀어주는 유령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작가의 말에서, 정글북을 영감을 준 책으로 들어서 곰곰 생각해보니,

늑대가 키우느냐, 유령이 키우느냐의 이야기였고, 둘 다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지 못하고 외따로 자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잘 자라서, 살이있는 인간이라는 본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 점도 공통점이겠지? 정글북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안난다;; 모글리, 인간 세상으로 나갔던가?)

 

정글북이 추천할 만한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The Graveyard book은 아이들(이 읽은 후에)과 읽기 좋은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 닐 게이먼이 미국인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영국인이었다;;; (신들의 전쟁이 미국 배경이었던가?)

영국인 테리 프래쳇과 미국인 닐 게이먼이 죽이 잘 맞네? 라고 생각했었는데, 영국인과 영국인이었다;;

(테리 프래챗이 2015년에 별세하셨었구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구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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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I 1 - 주기율표

책일기 2020. 1. 2. 12:31
주기율표 - 10점
에릭 셰리 지음, 김명남 옮김/교유서가

Very Short Introductions의 번역본이라는 흥미로운 시리즈를 발견해서, 고른 세 권 중에 첫번째는 주기율표였다.

 

솔직히 말해서, 책 내용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끝까지 읽고 감히 추천까지 할 수 있는 건, 주기율표가 가진 그 자체의 매력과, 주기율표에 대한 애정으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기율표의 처음과 그 주변부의 모든 이야기들이 흥미로운 덕분이다.

 

주기율표는, 누군가의 말대로 수백년간 화학자들이 자신들의 재능과 시간을 갈아넣어 완성도를 높여온 자연의 법칙을 찾기 위한 몸부림의 결정체이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아직까지 다 해석하지 못한 이 법칙에 따라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원소들을 계속해서 발견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시작은 고대 철학자들의 4대 원소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종종 보던 애니메이션에선 반지인지 뭔지 너댓이 모여서 그렇게도 물! 불! 바람(공기)! 흙! 이런 걸 외치더니 그게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알려준다. 세상은 4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은 플라톤의 정다면체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고, 그 정다면체의 모양의 특성에 따라 원소의 특징도 달라진다는 이론이었다.

이렇게 시작해서, 정 20면체가 발견되자 에테르, 빛을 매개하는 매질로 믿어졌던 제5원소가 있을 것이란 이론까지 나오게 된다.

 

이후 주기율표는 원소의 여러가지 특징에 따라 조금씩 순서를 바꿔가며, 원소를 추가해가며 발달해왔으며, 현재의 주기율표는 원자핵 속에 있는 양성자의 수, 즉 원자번호에 따라 정리되고 있으며, 가장 흔하게 쓰이는 현재의 주기율표의 고안자는 멘델레예프 라는 러시아 화학자로 여겨지고 있다. (멘델레예프는 원자 번호로 주기율표의 순서를 정한 건 아니었고, 원자량으로 정리했었는데, 이후에 헨리 모즐리가 원자번호로 재정리)

...

 

이런 거야 위키피디아에만 가도 잔뜩 있는 이야기지만(쓰고 있는 나도 다 이해한 건 아니고;;) 이걸 좀 더 정리해서 읽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VSI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에 수줍게 저자는 본인이 주기율표 실재론자라는 고백을 하며 책을 한층 더 귀엽게 만들어주고 있다.

더 읽어볼 거리로, 내가 이미 인상깊에 읽었던 프레모 레비의 주기율표 소설집을 들어주어서 호감이 배가되었다.

 

시간은 남고 주기율표는 궁금한데, 화학에 대한 지식이 나보다는 많고 이과생들보다는 적은 사람에게는 즐거운 독서 시간을 선사할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들고 다니는 동안 남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 포인트가 하나 더 생긴다. 이런 걸 왜 읽어? 라는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Posted by 구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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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 테드창

책일기 2019. 7. 22. 10:33

테드 창은 봐도봐도 천재, 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책은 천재에다가 사상가, 철학자, 선각자,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에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만 해도 충분할 정도 재밌으나, 주인공의 깨달음, 과거는 어쩔 수가 없으며, 미래만이 우리가 가꿔나갈 수 있다, 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올 만큼 고전적 가르침을 재밌는 스토리에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특히나, '옴팔로스'의 자유의지 예찬은, 재밌는 스토리에 예상치 못한 가르침을 이어붙이는 것의 끝을 본 기분이었다.

'월광천녀'나, '천사와 악마' 같은 작품에서와 같이, 인류가 세계 창조의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 일 뿐이라는 것이 사회에 대혼란을 가져올 충격이라는 것이 무신론자이자, 우주의 먼지 같은 주제에도 굴하지 않는 자기중심주의자인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설정이었는데, 옴팔로스 역시 비슷한 가정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갸웃갸웃, 심지어 테드 창조차! 라는 심정이 될 뻔 했으나.

테드 창은 테드 창이니까.

아름답게, "물리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을 기적이라고 할 때, 인간의 자유의지야 말로 기적이다'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훌륭함이 여기에서 그치면 테드 창이 아니라는 듯,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두고 두고 여러가지가 떠오르는 작품으로 생각의 여지를 많이 주고 있다.

리멤의 사용자 리뷰를 쓰기 위해 리멤을 활용하는 화자의 입장이 처음 읽고 난 후에는 공감이 되질 않았는데, 문득 문득, 나의 이 판단과 감정이 사실에 기반했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저 화자처럼, 내게 편하도록 진실을 왜곡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 (해리 포터의 슬러그혼 교수 또한 동일한 맥락의 기억 조작이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한 기억 조작과, 조작없는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통과 성찰 중 더 나은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까지 가게 된다.

 

무튼. 결론은 테드 창 만세.

만수무강하세요.

Posted by 구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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