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책일기 2020. 6. 9. 09:32
배움의 발견 - 10점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열린책들

 

추천 1이 있었고,

설정이 과하다는 느낌에 손이 안나갔고,

추천 2가 있어, 이 정도면 조금 맛이라도 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인정.

좋은 책이다.

 

 

Posted by 구이으니.
,

누가 제발, 내게는 피터 헤슬러의 책이 왜 이렇게도 재밌는지, 분석해서 설명해줄 수 없을까?

 

이집트 혁명이나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이 책을 읽기 전에 다른 이집트 역사 관련 책을 좀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시작했는데, 필요없었다.

그러니까 헤슬러가 중국에 대해서 쓴 책이 너무 흥미롭고 재밌었던 것도, 나의 중국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과 애정과는 무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충 한 챕터에 두세번은 쿡쿡거리게 되고, 한 번은 파안대소하게 만드는 비율로 책이 재밌다.

(어제 한 부분은 너무 웃겨서 읽어드리니, 큰 분도 재밌어 하긴 하셨다.)

 

아직 고작 4% 읽고 있지만, 이책을 재밌게 읽을 것이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책 제목이, 너무나 마이너해서, 이렇게 재밌는 책을 재밌다고 주위에 권할 수도 없는 것이 슬플 뿐이다)

 

 

 

 

 

 

 

1) 약간 긴 농담

 

아랍의 봄 이후 취임한 대통령 무르시는 '12년 11월에 모든 재판에 자신이 관여할 수 있다는 한시적인 대통령령을 선언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하였다. 시위대는 무르시의 정치적 배경인 무슬림형제단 본부를 습격하여, 가구와 서류 등을 광장으로 끄집어내어 불을 질렀다. 다음날 기자들은 불에 타고 남은 서류들을 뒤적거리며 중요한 문서가 없는지 찾아봤는데, 그 틈에 헤슬러 또한 끼어들어 뒤적거리다가 파리의 한 식당에서 식사한 비용의 청구서와 영수증을 발견하였다. 생선수프와 생선 2마리, 그리고 화이트 와인 반 병.

This was my most damning discovery : a Muslim Brother had been reimbursed for Chardonnay.

 

(헤슬러 책을 그냥 읽을 땐 이런 부분에서 빵빵 터지고 난리인데, 이걸 전하려고 줄이거나 설명하면... 이상하게 안웃기네;;)

 

 

2) 끝내주는 비유

 

10세기에 알아자리라는 이름의 사전편찬학자는 베두인 족에게 납치되는 엄청난 축복-알 함두리라! 하느님을 찬양합시다!-을 받았다. 이 경험으로 그는 "The Reparation of Speech"라는 사전을 편찬하였다. 책의 서문은, 일종의 문법적 스톡홀름 신드롬에서 in a kind of grammatical Stockholm syndrome, 호들갑스럽게 납치범들을 찬양한다. "그들은 사막 본연과 뿌리깊은 본능에 따라 말을 한다. 그들의 말에서는 언어적이거나 지독한 실수를 거의 들어볼 수 없다."

 

(아랍 공용어 후스하 al-fusha는 꾸란을 정리하며 표준어로 자리잡았는데, 이 때 베두인족의 말의 순수성이 높이 평가받아 그 표준어의 기초가 되었다. 공용어 정리에 al-Azhari 라는 사전편찬자의 기여가 컸다고 한다... 역시나 데굴데굴 구를만큼 천재적이라고 치켜올렸던 표현인데, 이 따위라니!)

 

 

3) 상상도 못한 이야기들

 

중국 저장 지방 출신의 중국인들은 상이집트 지역의 작은 소도시들에도 꼭 속옷을 팔면서 자리잡고 있는데, 어쩌다가 하필이면 저장성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속옷을 팔게 되었는지, 어떻게 헤슬러가 처음으로 이 중국인을 만나게 되었는지가 또 끝내주게 재밌다. (내가 쓰면서도 재미가 없지만, 헤슬러는 진짜 웃기게 쓴다니깐 ㅜ.ㅜ)

조금만 더 상세하게 쓰자면... 헤슬러가 고대유적지를 방문하거나 하면서 이집트 여러 지역을 다니는데, 어느 소도시에서 흔치 않은 미국인을 만난 이집트인들이 헤슬러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묻다가, 헤슬러가 중국에서도 살았다고 하니, 몹시 반가워하며, "중국인! 우리 도시에도 있어!"라며 데려가 보니 중국인이 하는 속옷 가게였다. 헤슬러가 신기해하니 그 중국인은 "옆도시엔 내 사촌이 속옷 가게를 하고 있어"라고 하고, 그 뒤로 헤슬러는 이집트 지방 여행 중에는 아무 도시에서나 "여기 중국인 속옷가게 있니?"라고 택시 기사 같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따라와"라며 중국인이 하는 속옷 가게에 데려다주곤 해서, 카이로를 제외한 지역에서 발견한 중국인 속옷상이 26명에 달하게 되었다. 헤슬러는 이들이 장사하는 대목에 속옷 가게에서 흥정을 지켜보기도 하며 저장성 중국인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4) 끝을 보기가 꺼려지는

 

prickly, contradictory, lovable 한 아랍어 선생을 잃게 되는 시점에, 헤슬러는 지속적인 경찰들의 감시를 받으며, 이 훈련받지 못한 경찰들이 실수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중국에 관한 여러 책을 읽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을 더 직접적으로 빠른 시간에 겪게 되는 건 아마 중국에서는 정치 외의 다른 것들을 더 많이 다루고, 이집트에서는 그렇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고... 왠지 씁쓸한 마무리를 볼 것 같은 예감에 책장 넘기는 것이 조금씩 꺼려지고 있다.

Posted by 구이으니.
,

슈독 - 필 나이트

책일기 2020. 2. 21. 11:02

 

슈독 :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자서전 - 10점
필 나이트 지음, 안세민 옮김/사회평론

 

오후 반차내고 마저 읽어야 할 책.

몇 번이고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아래를 확인해보는 이유는,

"이렇게나 막강한 나이키를 설립한 남자인데,

왜 아직도 이렇게 빌빌 거리고 있는 거지? 책의 어느 정도까지 징징거릴거지?

10%는 지난 거 같고, 20%도 넘겼고, 1/3 이상을 읽은 거 같은데,

아직도 '망할 거 같아' 라고 걱정하면서 회사를 꾸려 가는 거야?"

라는 의문이 계속 들어서이다.

이제 책 절반을 넘겼으며, 나이트는 여전히 아디다스를 따라잡지 못한 상태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의 책일 거라고 한 이유가 이제 슬슬 짐작이 된다.

"그들도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가 아마도 이 책을 관통하는 깨달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이트가 거의 10년째 두려움에 떨며 회사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책 절반을 분명하게 넘어선 지점에서 들기 시작했다.

 

오후는 반차다!

 

웬만한 소설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이 책을 마저 읽지 않을 수가 없다!

 

 

 

+

반차는 못갔다. (젠장)

책은 끝까지 재밌었고,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아무래도 시대가 변했다 보니, 거슬리는 부분들이 눈에 많이 띄고...

이렇게 우직하게 자수성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꼰대의 스멜도 짙고...

등등의 단점들도 분명히 있지만,

 

이야기는 흥미롭고 자극도 주고 깨달음도 준다는 장점도 많은 책이다.

 

처음에 멋대로 예측한 것처럼 두려움을 이겨내는 위인들의 이야기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계속해서 급속도로 성장하는 운전자본이 큰 사업을 운영하며 늘 현금 부족에 시달리는 CEO지만, 돈만을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돈은 우리몸의 현금과 같이 없으면 기업이 죽겠지만, 우리가 혈액 순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업도 돈만이 목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사명감,

나이키의 해외생산 공장들에 대한 지적에 대해 '우리가 더 낫게 만들었다'는 자부심에 화를 내지만, 결국,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수성 접착제를 개발하고 이를 무상으로 경쟁업체들에게 제공하거나, 제3국의 어린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the girl effect 사업 등을 이뤄나가는 점은 분명히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다.

 

나이트는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보다 재산도 훨씬 적고, 다른 경영자들처럼 카리스마도 없는 사람이라고 겸손해 하지만,(책에서도 내내 징징거리시고), 그는 사명감으로 나이키 같은 회사를 일군 사람이고, 대부분은 그런 성과를 일구지 못하겠지만, 돈이 목표가 아닌 삶, 더 나아지겠다는 결심과 실천은, 보통 사람들의 인생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요소일 것이다.

 

 

++ book hangover가 걱정되어서, 다음 책 고르기가 망설여지는 덕분에, 다시 또 로맨스 ㅋㅋ

Posted by 구이으니.
,

 

아이들의 계급투쟁 - 6점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사계절

 

저자가 일본인인줄 몰랐다.

일본 번역체로 소설 아닌 걸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 부분이 좀 거슬리긴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얼핏 얼핏 보이던 영국의 언더클래스 이야기를 좀 더 상세하게 알게 되고,

이어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영화를 보니 정말 눈물이 주륵주륵 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죽음 밖에 남겨놓지 않은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노동당 시절의 복지도, 보수당 시절도 어느 쪽도 인간의 존엄을 위한 배려는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

 

최근의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정말로 세상은 디스토피아로 나아가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Posted by 구이으니.
,

VSI 2 - 서양의학사

책일기 2020. 2. 19. 17:01
서양의학사 - 8점
윌리엄 바이넘 지음, 박승만 옮김/교유서가

 

VSI를 두 권째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이게 "short"에 중점을 둔 거라 전혀 "easy"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introduction이라는 건 보통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해주는 거니까 기본이 쉬워야 하는 건... 원래 상식이 풍부한 사람에게 하는 건 굳이 쉽지 않아도 되는 건가 ㅜ.ㅜ)

 

서양의학사도 역시 니가 이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내가 이런 정도까지는 이야기해줄 수 있고, 그리고 너는 계속해서 이러저러한 책들을 더 읽어보는 것도 좋겠지, 라는 책이었다.

 

현재의 병원 개념이 아주 늦게서야 나타난 것이라던가, 외과의의 지위가 더 낮았다던가, 히포크라테스는 다양한 장르의 "의업"(사이비거나 정통이거나)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에게서 근본정신을 물려받고 있다고 여겨진다거나, 의사들의 지식과 경험과 실력은 여전히 매우 다르기 때문에 환자들은 신중하게 의사를 골라야 한다거나, 만성 질환의 약 개발만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눈에 띄지만,

전반적으로 다 몰랐던 이야기라, 읽는 것은 즐거운 책이다.

 

다만, 역자의 추천대로 동양의학사도 포함한 책으로 더 파볼 것인가 라는 점은 잘;;

(예전 같으면 더 들어갔겠지만 지금은 에너지가 부족해서 ㅜ.ㅜ)

Posted by 구이으니.
,
The Graveyard Book (Paperback) - 10점
Gaiman, Neil/Harpercollins Childrens Books

 

큰 분의 학원 교재라 아무 생각 없이 제목만 보고 주문했다가, 도착한 책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뭐? 닐 게이먼? 내가 아는 그 게이먼? 게다가 나는 안 읽은?

 

당장 뺏어서 읽다가, 숙제 해야 한다고 뺏겼다가, 왜 거기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곳곳에 형광펜 그어진 채로, 과정이 끝났다며 도로 던져주어 마저 읽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소설에다가, 닐 게이먼에다가, 일종의 판타지?

게임을 못할 정도로 책에 푹 빠져 열심히 읽었다.

 

The Man Jack들의 다른 악행이나 Silas의 정체나 이야기의 개연성이 다 매끄럽지 않았지만,

우선 묘지에서 유령들이 돌보는 아이라는 것부터가 너무나 매력적이지 않은가.

 

Between now and there, there should be the life.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들(the deads)과 마찬가지로 죽는 게 뭐가 나쁘냐는 Bod에게 그래도 그 사이에 삶이 있어야 한다는, 그리하여 가보지 않은 길을 남겨두지 말라고 등떠밀어주는 유령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작가의 말에서, 정글북을 영감을 준 책으로 들어서 곰곰 생각해보니,

늑대가 키우느냐, 유령이 키우느냐의 이야기였고, 둘 다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지 못하고 외따로 자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잘 자라서, 살이있는 인간이라는 본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 점도 공통점이겠지? 정글북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안난다;; 모글리, 인간 세상으로 나갔던가?)

 

정글북이 추천할 만한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The Graveyard book은 아이들(이 읽은 후에)과 읽기 좋은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 닐 게이먼이 미국인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영국인이었다;;; (신들의 전쟁이 미국 배경이었던가?)

영국인 테리 프래쳇과 미국인 닐 게이먼이 죽이 잘 맞네? 라고 생각했었는데, 영국인과 영국인이었다;;

(테리 프래챗이 2015년에 별세하셨었구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구이으니.
,

VSI 1 - 주기율표

책일기 2020. 1. 2. 12:31
주기율표 - 10점
에릭 셰리 지음, 김명남 옮김/교유서가

Very Short Introductions의 번역본이라는 흥미로운 시리즈를 발견해서, 고른 세 권 중에 첫번째는 주기율표였다.

 

솔직히 말해서, 책 내용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끝까지 읽고 감히 추천까지 할 수 있는 건, 주기율표가 가진 그 자체의 매력과, 주기율표에 대한 애정으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기율표의 처음과 그 주변부의 모든 이야기들이 흥미로운 덕분이다.

 

주기율표는, 누군가의 말대로 수백년간 화학자들이 자신들의 재능과 시간을 갈아넣어 완성도를 높여온 자연의 법칙을 찾기 위한 몸부림의 결정체이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아직까지 다 해석하지 못한 이 법칙에 따라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원소들을 계속해서 발견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시작은 고대 철학자들의 4대 원소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종종 보던 애니메이션에선 반지인지 뭔지 너댓이 모여서 그렇게도 물! 불! 바람(공기)! 흙! 이런 걸 외치더니 그게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알려준다. 세상은 4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은 플라톤의 정다면체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고, 그 정다면체의 모양의 특성에 따라 원소의 특징도 달라진다는 이론이었다.

이렇게 시작해서, 정 20면체가 발견되자 에테르, 빛을 매개하는 매질로 믿어졌던 제5원소가 있을 것이란 이론까지 나오게 된다.

 

이후 주기율표는 원소의 여러가지 특징에 따라 조금씩 순서를 바꿔가며, 원소를 추가해가며 발달해왔으며, 현재의 주기율표는 원자핵 속에 있는 양성자의 수, 즉 원자번호에 따라 정리되고 있으며, 가장 흔하게 쓰이는 현재의 주기율표의 고안자는 멘델레예프 라는 러시아 화학자로 여겨지고 있다. (멘델레예프는 원자 번호로 주기율표의 순서를 정한 건 아니었고, 원자량으로 정리했었는데, 이후에 헨리 모즐리가 원자번호로 재정리)

...

 

이런 거야 위키피디아에만 가도 잔뜩 있는 이야기지만(쓰고 있는 나도 다 이해한 건 아니고;;) 이걸 좀 더 정리해서 읽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VSI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에 수줍게 저자는 본인이 주기율표 실재론자라는 고백을 하며 책을 한층 더 귀엽게 만들어주고 있다.

더 읽어볼 거리로, 내가 이미 인상깊에 읽었던 프레모 레비의 주기율표 소설집을 들어주어서 호감이 배가되었다.

 

시간은 남고 주기율표는 궁금한데, 화학에 대한 지식이 나보다는 많고 이과생들보다는 적은 사람에게는 즐거운 독서 시간을 선사할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들고 다니는 동안 남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 포인트가 하나 더 생긴다. 이런 걸 왜 읽어? 라는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Posted by 구이으니.
,

숨 - 테드창

책일기 2019. 7. 22. 10:33

테드 창은 봐도봐도 천재, 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책은 천재에다가 사상가, 철학자, 선각자,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에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만 해도 충분할 정도 재밌으나, 주인공의 깨달음, 과거는 어쩔 수가 없으며, 미래만이 우리가 가꿔나갈 수 있다, 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올 만큼 고전적 가르침을 재밌는 스토리에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특히나, '옴팔로스'의 자유의지 예찬은, 재밌는 스토리에 예상치 못한 가르침을 이어붙이는 것의 끝을 본 기분이었다.

'월광천녀'나, '천사와 악마' 같은 작품에서와 같이, 인류가 세계 창조의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 일 뿐이라는 것이 사회에 대혼란을 가져올 충격이라는 것이 무신론자이자, 우주의 먼지 같은 주제에도 굴하지 않는 자기중심주의자인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설정이었는데, 옴팔로스 역시 비슷한 가정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갸웃갸웃, 심지어 테드 창조차! 라는 심정이 될 뻔 했으나.

테드 창은 테드 창이니까.

아름답게, "물리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을 기적이라고 할 때, 인간의 자유의지야 말로 기적이다'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훌륭함이 여기에서 그치면 테드 창이 아니라는 듯,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두고 두고 여러가지가 떠오르는 작품으로 생각의 여지를 많이 주고 있다.

리멤의 사용자 리뷰를 쓰기 위해 리멤을 활용하는 화자의 입장이 처음 읽고 난 후에는 공감이 되질 않았는데, 문득 문득, 나의 이 판단과 감정이 사실에 기반했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저 화자처럼, 내게 편하도록 진실을 왜곡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 (해리 포터의 슬러그혼 교수 또한 동일한 맥락의 기억 조작이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한 기억 조작과, 조작없는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통과 성찰 중 더 나은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까지 가게 된다.

 

무튼. 결론은 테드 창 만세.

만수무강하세요.

Posted by 구이으니.
,

미루기의 천재들

책일기 2019. 3. 13. 09:39

"어쨌든,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 띠지를 보라.

안 읽을 수 없지 않겠는가.

 

특히나 사무치는 미루기로 인한 실수를 한 월요일을 보낸 주의 중반에 시작하기론, 이보다 적절한 책이 없겠다.

월요일의 실수를 위로해주기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

Posted by 구이으니.
,

직업의 지리학

책일기 2019. 3. 11. 12:57
직업의 지리학 - 6점
엔리코 모레티 지음, 송철복 옮김/김영사



묘하게 반발감이 들어서, 잘 안 읽히는 책인데,

아침엔 또 사소한 곳에서 쓸데없이 터지고 말았다.

이런 재미야 말로 책읽는 즐거움이라고 우겨본다.

 

 

1.

얼마전 트위터에서 이런 트윗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https://twitter.com/yuki7979seoul/status/1076588368413175808

 

이게 트위터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었다.

 

폴 크루그만은 언젠가 이런 유명한 글귀를 남겼다. "지식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측정하고 추적할 수 있는 어떤 문서상 행적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론가가 지식 흐름에 대해 멋대로 어떤 것을 상정하더라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크루그먼의 이 같은 회의론에 자극받아 많은 연구자들은 아이디어의 확산을 측정해내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1993년 세 경제학자(애덤 자페, 마누엘 트라이텐버그, 레베카 헨더슨)가 쓸 만한 문서상 행적, 즉 특허 인용을 찾아냈다.

 

 

크루그만은 영리하게도 "지식의 흐름을 측정하는 방법이 있을까요?"라고 질문하는 것보다, "지식의 흐름을 측정하는 방법이 없다"라고 단정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를 연구해줄 이들이 더 많을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이다!

 

...

책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좀 더 읽은 뒤에 정리하도록 하자...;;

 

그 전에, 책 내용에 마침,

 

 

2.

존 라세터가 얼마나 창의적인 노동자인지, 그런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큰 지를 읽는 와중에,

이런 기사가 같이 떠주면서, 것 봐, 이래서 내가 이 책에 묘한 반감이 계속 들었다구, 의 근거가 되어 주는 사례가 있었다.

 

라세터는 픽사를 의료기기용 영상장비에서 영화 산업으로 방향 전화하게 해준 첫 단편 영화 '앙드레와 왈리 B의 모험'을 선보이고, 이후 픽사의 창작 담당 최고 경영자로서 다양한 히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스마트 노동이 픽사의 가치를 바꾸게 되었다는 예시가 특출난 1명은 보통 사람 100배의 가치를 가진다는 논거로 제시되고 있다.

내게는, 잘못된 논거 하나가 전체 책에 대한 이미지를 망치는 좋은 예가 되고 말았지만.

 

https://twitter.com/kouhogue/status/1100766498216325120

 

 

3.

비뚤어지려고 맘 먹으면, 그게 얼마나 쉬우냐면,

 

여론 조사원이 유럽인들에게 "사는 곳에 애착을 느끼냐?"라고 물어볼 때, "전혀 애착이 없다" 또는 "그다지 애착이 없다"라는 대답이 높게 나오는 나라는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이고, 이들 나라는 평균 교육 수준이 높다. 이와는 반대의 대답이 나오는 나라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며, 이들 나라는 평균 교육 수준이 낮다.

 

 

....

잘 모르긴 하지만, 핀란드나 덴마크보단, 일반적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기후와 자연이 세계적으로 더 인기가 많다고 알고 있지만, 자연환경보단 평균 교육 수준의 위 질문의 답변에 더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치자 =_=

 

맘만 먹고 있다면, 저런 단순한 사례에서조차 팍팍 비뚤어질 수 있는 것이다.

 

 

**************************************

참으로 꾸역꾸역 읽은 책이었다.

 

트집잡자면

우선, 문장이 이상했다. 교정이 충분하게 이뤄진 건가? 이 동사와 목적어가 맞게 이어지는 건가? 라는 문장이 최소한 5개쯤 있었다.

 

논리의 흐름이 막판에 특히, 뭐지 이건? 이라는 부분들도 있었다.

 

스탠퍼드가, 실리콘밸리를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대학을 유치한다고 첨단산업이 모여들지 않는다더니, 더 나은 미국을 위해서는 고등학교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고 하는 건... 뭐 말이 안되는 건 아니구나;

그건 그냥, 미국 전체적인 숙련 노동자 증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나부다.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이야기다.

 

교역 가능한 산업의 부흥은 승수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산호세처럼 잘나가는 도시에서는 숙련/비숙련 노동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된다.

현대의 승수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제조업이 아니라 첨단 산업이며(IT와 생명공학 등) 이 첨단산업이 자리잡는 것은 우연이다. 좋은 대학이 있다거나, 도시의 삶의 질이 좋은 것은 첨단사업 집중의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충분조건이 아니다. 시애틀이 현재의 시애틀이 된 건 우연히도 빌 게이츠와 그 동업자가 시애틀 출신이라 고향에 돌아갔기 때문일 뿐이다. 지역 정부들이 세금 혜택 및 인센티브 제공 등의 기업 유치 노력이나 생활 인프라를 개선하는 등의 여러가지 프로그램으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비용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미국이 현재 첨단산업의 우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교육부터 숙련노동자를 더 증가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응? 역시 결론이 이상해 =_=)

 

 

미국처럼 거대한 땅이 아닌 한국에선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미 서울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지방 도시들은 실리콘밸리를 꿈꾸고 있는데, 서울 외에 다른 실리콘밸리가 필요할 것인가, 라는 점은 의문이다.

물론 서울은 하나의 도시로 기능하기엔 지나치게 큰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지방 도시들도 공존하면 좋긴 하겠다.

게다가 책에 잠시 언급되는 것처럼, 첨단산업이 집중되는 도시의 노동자들은 임금 상승과 함께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라는 이익도 누리게 되므로, 혹시 될 성 부른 도시가 있다면, 누가 귀뜸해주고, 같이 부동산도 매입해두면 더욱 좋겠다. (응? 이것도 결론이 이상하네;;)

Posted by 구이으니.
,
몰입 Flow - 8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최인수 옮김/한울림

 

 

제목 센스 좀;; =_=

 

추천사부터 맘에 든다.

Flow 개념을 이렇게 간결하고 매력적으로 설명하다니.

 

 

개념적으로 플로우 상태는 따분함과 불안함 사이에 위치한다. 자신의 기술 수준이 과제가 주는 어려움에 미치지 못할 때는 불안함을, 반대로 기술 수준이 어려움보다 더 높을 때는 따분함을 느끼게 된다.

 

 

즉, 기술수준과 과제의 어려움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그 상태가 Flow 상태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굳이 사양하는 것을 굳이 너무나 재밌는 개념이라고 들려줬더니, 파레토 최적과 비슷한 상태냐고 했는데, 비슷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술술 책장이 넘어가지는 않는, 꽤 어려운 책이다 보니 그 사이에 SK*캐슬과 우주를 떠*는 *독새가 끼어들어서 천천히 천천히 진도 나가고 있다.

 

2장 의식에 관해서 알아보기에서도 역시 재밌는 개념을 발견했다.

인간이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는 내용인데....

 

유한한 인생에서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개수가 1,850억 개라는 통계는... 중략...

어쨌든 한 개인은 처리할 수 있는 만큼의 정보만큼 처리할 뿐이다. 따라서 정보의 숫자는 별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의식 속으로 집어넣게 되는 정보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결국에는 이것들이 우리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이다.

 

 

 

아... 인생에서 유한하지 않은 것이 없구나.... 역시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질의 문제로 귀결한다.

 

(현재 2장 읽는 중 -_-;)

 

 

3장과 4장은 즐거움을 이루는 요인들과 플로우의 조건들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자기목적적(autoelic) 경험이 즐거움의 원천이 되고, 이 자기목적적이란 이야기는 경험 그 자체가 목적일 뿐 그로 인한 외부적 댓가(돈이나 명성)등이 아닌 것을 말한다고 한다.

 

플로우를 주는 활동들은 규칙이 있고, 규칙을 수행하기 위한 기술이 필요하고, 목표가 분명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며 통제가 가능한 활동들로, 운동, 연극, 미술 등이 좋은 예라고 한다.

여기서도 역시 자기목적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자기 목적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플로우를 더 쉽게 더 자주 경험한다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자기 목적적 성격을 형성하도록 도와주는 가정 환경에 대해서도 다뤄지고 있다.

첫번째는 명료성으로 부모가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아이들이 명료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목표와 피드백이 명확한 것,

두번째로 현재 자녀들이 하고 있는 일의 구체적인 경험과 감정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믿는 자녀들의 지각인 중심성,

세번째 선택성은 아이들이 무얼 선택할지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다면 부모들의 규칙도 깰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네번째는 부모의 보호 아래 충분히 편안함을 느껴 자기가 관심 있는 어떤 것이든 간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신뢰성,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점차 복합적인 행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부모의 헌신이라고 한다.

이런 가정의 아이들이 부모가 있거나 없거나 플로우 경험을 더 많이 경험한다고 하는데, 얘네도 친구들이랑 있을 땐 그닥 상관없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동안 아이들은 모두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한다고 한다.

 

 

문제는 5장에서 발견된다.

우리 몸을 통해 플로우 얻기

 

몸치 한 평생을 살고 있는 나에게, 금방 좌절감을 안겨 준 장이다.

 

스스로 조절하지도 못하고 재미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데도 의무감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대표적으로 나)은 구체적 행위나 사건만이 개인의 경험을 결정하는 현실이 된다고 가정하고 있으며, 멋진 헬스클럽에 가입하면 반드시 재미있게 운동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데, 즐거움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의 여부에 따른 것이므로, 의무감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즐겁지 않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

즉 나.

 

그리고 연구에 따르면 값비싼 물질적 자원이 필요한 여가활동(PT나 골프?)을 할 때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여가 활동 때보다 그 즐거움이 훨씬 감소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5장에서 좌절 중)

 

 

한 문장 한 문장 괴롭던 5장을 넘어 6장으로 왔다.

지적 활동을 통해 플로우 찾기.

하필이면 첫번째 즐거움이 기억이야. 요즘 내가 젤 자신없는 그거. -_-

 

(위로가 되지 않는 6장)

 

7장은 주변의 인물들(특히 워커홀릭 *수*씨)에게 권해주고 싶은 '일 속에서 플로우 경험하기'인데, 여가에서 보다 일에서 플로우 경험하기가 쉬운 것은 당연하다, 목표가 정해져 있고 집중하기 쉬우며 피드백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가보다 그렇다라는 특성에 더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최적 경험을 얻기 쉬운 일보다 여가를 더 원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일에 대한 통념이 잘못된 것 아닐까 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8장은 혼자 있음과 함께 있음을 즐기기라는 제목으로, 외로움이 주는 고통과 고독을 길들이기라는 내용에서 잘 와닿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정신적 일과를 설정해서 고독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보라는 이야기와, 그것보다 많은 정성을 기울여서, 가족들과도 친구들과도 관계에 대한 노력없이 함께 있음을 즐기는 상태는 이룰 수 없으므로 관심을 기울이고 시간을 들여 가족도 친구도 또는 지역사회(정치)까지도 가꿔보라고 조언한다.

 

9장 Cheating Chaos에서는 '소산구조'라는 어려운 개념을 들어, 엔트로피로부터 에너지를 추출하는 것이 우리가 생존하는 방식이므로, 비극과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소산 구조의 정신 세계를 이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서는, 1. 자의식 없는 자신감, 2. 세계로의 관심 전환, 3. 새로운 해결책의 발견이라는 세 가지로 구성된 희망이 없는 상황을 통제 가능한 새로운 플로우 활동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좋겠단다.

요약이 있는데, 1. 목표 설정하기, 2. 활동에 몰입하기, 3. 주변 상황에 관심 기울이기, 4. 지금 현재의 경험 즐기는 법 배우기 같은 어디서 많이 본 규칙들을 통해 자기 목적적 자아를 개발할 수 있다고 한다...

(자의식은 줄이고)

 

10장 의미 창조하기에서는 의미의 의미가 목적/의도/정보 라는 세 가지 용법이 있는데, 통합된 목적을 추구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의도한 바가 행동으로 나타나게 하는 결의, 그 두 단계의 소산,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삶은 의미를 가지며 대부분의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된다는 어려운 이야기가 들어있다.

마지막엔, 단테의 신곡 일부분을 다루면서 중년의 기업가들에게 중년의 위기와 중년 이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선택들에 대한 토론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신곡이 이런 이야기를 포함하는 걸 처음 알았다. (신곡이 뭔지 자체를 잘 모른다 사실;)

"우리 인생의 여정 한 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옳은 길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다"라고 시작해서, 어두운 숲 속에서 야망/육욕/탐욕을 의미하는 사자/시라소니/늑대에게 쫓기고, 절박한 상황에서 고대 로마의 시인 버질이 숲을 벗어날 길이 있으나 그 길은 지옥을 통과하는 길이라고 알려주어 둘은 지옥을 통과해 나가며, 목적을 한 번도 설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겪는 고통(내 것인가 싶은;;)과 인생의 목적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것이었던 죄인들의 더 혹심한 운명도 본다,

 

라고 신곡의 일부분을 요약해 두었다.

 

 

 

 

 

이렇게 읽는데 많은 시간과 이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책을 읽었는데, 지금 내리는 결론은, 최적 경험을 많이 하는 즐거운 인생을 위해서는 자의식을 벗어나 목적을 설정하고,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활동에 몰입하시고, 여가보다 일에서 Flow를 더 자주 경험할 수 있으니, 일을 더 즐기는 당신을 받아들이세요, 정도 되겠다.

 

 

 

여유가 되신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특별히 메시지가 유별나지 않지만, 메시지를 다루는 방식은 맘에 드네요. (고기는 늘 먹는 그 고기지만 요리는 정갈하고 맛있습니다, 정도의)

Posted by 구이으니.
,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 8점
위화 지음, 이욱연 옮김/문학동네

 

 

위화는 소설가인데, 소설은 하나도 안읽고 산문집만 두 권째 읽고 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를 몹시 좋은 책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번 것은 그것만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킬킬거리며 주억거리며 잘 읽고 있는 중이다.

사람의...의 소재가 좀 더 중국의 현대에 관한 것이라면, 우리는...은 그보다는 위화의 글쓰기와 독서와 관련된 소재이다 보니 범용성이 떨어진다.

위화가 보고 겪은 격변의 중국이라는 부제나 책 제목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라는 부분은 분명 중국의 현황에 대한 글이 맞지만, 전자가 중국내에서 출판되지 못했던 것와 이 책은 중국에서 출판되었다는 것이 뭔가를 짐작케 한다고 보면, 그게 딱 맞겠다.

 

하지만, 좋은 작가들의 독서 이야기 또한 몹시 즐거운 것이라, 카프카나 포크너, 마르께스, 매큐언 등의 낯익은 작가 이름이 줄줄 나오는 소소한 일화들 또한 몹시 유쾌하다. (매큐언은 유쾌는 아니었나...)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은 부분들.

 

 

한 친구가 프라하의 문학제에 참석했는데, 위원장이 핸드백을 도둑맞았다. 그런데 잠시 후 도둑이 돌아와서 화를 내며, 왜 핸드백에 돈이 없냐고 화를 냈다. 중요한 자료가 들어있던 핸드백을 도둑맞은 위원장이 가방을 찾자 버렸다고 해서, 사람들은 도둑을 경찰서로 끌고 갔는데, 경찰들이 카드게임을 하는 동안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카드를 마친 경찰은 도둑에게 진술서를 쓰라고 한 뒤 그를 보내고, 위원장과 외국 작가와 시인들에게도 진술서를 쓰라고 했는데, 중국 작가와 시인들은 체코어를 몰라 전문 통역가가 필요해서, 위원장이 자신이 통역하겠다고 하자 경찰이 관계자라 안되며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고 해서, 가까스로 통역을 구해 모든 증인이 진술서를 다 쓰고 나자 날이 밝았다. 일행은 경찰서를 나서며 "그 도둑은 지금쯤 달게 자고 있겠지요"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친구가 이야기를 마치며 말했다. "그래서 거기서 카프카가 나온 거야."

 

 

 

포크너의 묘지를 찾은 마르께스도 재밌었는데, 줄여쓰자니 그 재미를 전달할 수가 없겠다;;

두 학자의 초상에 나오는 두 중국학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워서 찾아 읽어보고 싶다.

 

여러가지 이유로, 내 인생에 허락된 술과 소설은 내가 이미 꽤나 마시고 읽어버렸는지, 술도 소설도 그닥 유혹적이지 않고, 위화의 독서 이력에서 현재까지 가장 흥미가 가는 것은 이 두 학자의 초상에 묘사된 어느 학자의 초상, 이라는 전기이다.

 

****************

별 하나는 빼야겠다.

아들 사랑이야 이해하는 바지만, 아이가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게 해야 한다는 (가치를 존중받는 것과는 다른) 전제를 믿는 바라, 아들 자랑과 아들에게 쓴 편지 부분은 딱히 맘에 들지 않았고, 티벳 쪽도 잘 모르겠다....

 

뒤쪽의 블로그 부분도 굳이 넣었어야 했나 싶다.

 

좋은 작가라고 모든 글이 다 가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것은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게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위화도 책 중에서 말했단 말이다.

Posted by 구이으니.
,

서늘한 신호

책일기 2018. 11. 23. 13:06

생각보다, 첫인상보다, 괜찮다.

깨닫지 못했던 부분들과, 잘 정리된 대조들이 특히 인상 깊다.

 

 

- 거슬리는 낯선 이에게 그냥 무례하라.

무례하게 보이는 것이 직관이 경고하는 위험을 무시하는 것보다 낫다.

특히 여자들은 늘 거절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배워왔기 때문에, 낯선이로부터 청하지 않은 친절을 거절하는 것조차 무례하게 보일까봐 받아들이는데, 그냥 무례하라.

 

- 한 팀 강요, 매력과 친절, "아니요"라는 말 무시하기 등의 약탈 수법

한 팀 강요 : "우리"라는 단어를 쓰면서 한 배를 탄 동료를 거절하기 힘들게 하는 것.

(연금이 늦게 입금된다고 기다리면서, 은행에 피해자라는 "우리"를 만드는 케이스는 천재적)

매력과 친절 : 미소는 "감정을 감추기 위한 전형적인 위장"이며, "그 사람은 정말 친절했어요"라는 말은 그렇게 친절했던 사람이 즉시 혹은 몇 달 뒤에 자신을 공격했다고 묘사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웃으면서 말한다고 까칠하지 않은 게 아니다"라는 몇 주 전 내 상사의 표현이 기억난다)

"아니요"라는 말 무시하기 : 이건 정말 데이트하는 모든 남자들을 이 관점에서 보라고 여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말이다.

 

- 직관이 늘 옳지는 않지만, 두 가지 중요한 면에서 항상 옳다.

1) 직관은 언제나 뭔가에 반응한다.

2) 직관은 언제나 당신이 잘되기만을 바란다.

 

- 직관을 전달하는 메신저들이 여러 종류가 있지만, (미심쩍은 느낌, 놀라움, 예감, 의혹, 두려움, 호기심, 망설임 등) 그 중에 블랙 유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 '정반대의 규칙'으로 정리된 낯선 배달원의 위험도 측정 방법

1) 호의적인 행동 : 자기 일만 한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 안내해줄 때까지 기다린다, 시간을 신경 쓰며 재빨리 일한다. 다른 사람이 집에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2) 거슬리는 행동 : 상관없는 일을 도와주려 한다, 너무 가까이 서 있다, 마음대로 집안을 돌아다닌다, 서둘러 떠나려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집에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 외 책 자체와 관련해서는,

우선 전개가 와 닿지 않는다. 큰 틀에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우선은 안내하는 대로 끌려가며 읽고 있어서, 이 흥미로운 정보들이 뭐에 쓰이는 물건인지 계속 헷갈리는 중이다. 다 읽고 나면 정리가 되면 좋겠다.

두번째로는 문장이 산만한 느낌이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유가 번역 때문인지, 원래 문장이 그런 건지 모르겠다.

 

1/4 정도 읽은 상태에서, 딸 가진 부모들과, 여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 거의 다 읽었는데,

해고된 직장동료의 위험 부분은 해고가 쉽지 않은 한국(또는 내가 현재 다니는 회사)에선 실감하기 어려운 위험이라 차치하고, 스토킹을 대응하는 방법 등도 매우 유용했다.

그러나 저러나, 여자들에겐 참으로 생존하기 더 어려운 세상인 것이 참 슬프다.

 

이 책은 출간된지 2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유용한 상황이라는 것이 더 슬프다.

 

저자인 개빈 드 베커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 내 폭력이 있었던 것을 몇 차례 언급하는데, 책의 뒷 부분에서 교도소의 어느 치유 프로그램에서 만난 자신과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우리는 너무나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왜 당신은 그렇게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여기를 방문하고, 나는 왜 여기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것인가.

개빈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알콜중독 아버지를 둔 형제가 서로에게 묻는 것과 같다. 너는 왜 알콜 중독자가 되었느냐, 라고 한 형제가 물으면, 그 답은 아버지가 알콜중독이었으니까, 일테고, 너는 왜 알콜 중독자가 되지 않았느냐, 라고 다른 형제가 물으면, 그 답 역시 아버지가 알콜중독이었으니까, 일 것이라고.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청소년기, 사춘기에 아이에게 그 자신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소중히 대해주는 주변의 사람을 만났느냐 아니냐라고 답한다. 개빈에겐 5학년 시절의 담임이 있었고, 수감된 사람에겐 없었던 것이라고.

 

슬픈 결말을 가진 많은 사연들과, 슬픈 결말을 가까스로 피한 다행인 사례들을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스스로의 위험을 피하는 방법과 위험에 처한 주변의 사람을 돕는 방법도 함께 제시해주는 이 책은 일독을 권할 만하다.

Posted by 구이으니.
,

"시대 구분은 엔지니어링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석기시대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 손으로 돌을 깎아내던 시대였고, 청동기시대는 무기, 도구, 공예품을 주조하기 위해 구리와 주석을 제련하던 시대였으며, 철기시대는 농기구와 도구를 만들어대기 위해 철을 담금질하고 구부리던 시대였죠. 게다가 오늘날의 실리콘시대는 전자산업의 기본적 재료를 그 이름으로 삼았고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의 기계공학 교수를 거쳐 현재 미국의 국립 엔지니어링 아카데미의 회장인 댄 모트 2세의 대답이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봐 분명히 하자면, 이러한 시대 구분은 엔지니어들이 정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들이 정했다. ...

그리고 한 가지 더, 엔지니어들은 스스로 완벽하다고 주장할 만큼 오만하지 않다. 그 자신이 훌륭한 엔지니어인 모트 2세 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엔지니어링과 무관한 시대도 있긴 하죠. 빙하 시대는 엔지니어들이 만든 건 아니니까요."

 

 

 

서문의 시작이 이 정도면, 이 책 읽을 만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무려 얇기까지 하다. 현재로선 미덕이 많아 보이는 책.

Posted by 구이으니.
,

오디블 크레딧이 남아서 뭘 살까 하다가, 피터 헤슬러의 다른 작품과는 나레이터가 달라서 선택.

이 분(George Backman) 목소리가 훨씬 취향이네.

 

서문만 듣고도 한참 키득대면서 즐겁게 출근했다.

첫번째 장을 듣고 있지만 아쉬움이 밀려든다.

 

이게 아마 내가 읽지 않은 헤슬러의 마지막 책일 거다 싶으니,

어디서 또 이런 재미난 작가를 발굴해서 읽나 싶어 슬퍼지려고 한다.

 

 

 

- 큰 쥐로 드시겠어요? 작은 쥐로 드시겠어요?

- 두 개의 차이가 뭔가요?

- 큰 쥐는 풀을 먹고, 작은 쥐는 과일을 먹어요.

- 어느 게 더 맛있어요?

- 둘 다 맛있어요.

- 저한테 어떤 걸 추천해주시겠어요?

- 둘 다 좋아요.

 

첫번째 쥐식당에서 힘든 결정(작은쥐)을 내린 후에, 두번째 식당에서는 자신있게 큰쥐로 선택을 한 피터에게 다시 결정의 시련이 닥쳤다.

 

- 큰 쥐로 주세요.

- 와서 고르세요.

- 네?

- 원하는 쥐를 고르시라구요.

 

 

 

횟집에서 어느 생선을 잡을지 고르라는 걸 상상하면 되겠다.

 

써놓고 보니 그렇게 웃기지도 않지만...

Backman의 목소리로 들을 땐 되게 웃겼다...

Posted by 구이으니.
,